영덕 장사상륙작전 삼사해상공원 야경 코스
계획에 없던 여행은 때로는 더 깊은 여운을 남기곤 하죠. 원래 목적지는 삼척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발길이 영덕으로 향했습니다. 이틀 전부터 출발한다고 큰소리쳐놓고는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아이들의 재촉 전화를 받기 일쑤였네요. ^^; 하지만 덕분에 영덕의 밤과 낮, 그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예기치 않은 만남이 선물해 준 영덕의 야경과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삼사해상공원, 고요함 속에서 빛나는 경북대종각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사해상공원이 있다는 말에, 늦은 밤이었지만 무작정 차를 몰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공원은 낮의 활기와는 전혀 다른, 깊고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더군요.
어둠이 내린 공원의 첫인상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을까요? 주차장엔 제 차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인적마저 드물어 살짝 으스스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적막함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도시의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롯이 밤바다의 소리와 제 발걸음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산책로를 따라 은은하게 켜진 조명들이 길을 안내해 주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밤의 정취를 한껏 더해주었습니다.
새해를 여는 희망의 종소리, 경북대종각
공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경북대종각은 어둠 속에서도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처마선에 비추는 조명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죠. 이곳이 바로 매년 12월 31일, 수많은 인파가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는 그 유명한 장소라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벅차오르는 기분이었어요. 지금은 비록 고요하지만, 희망을 염원하는 수만 명의 마음이 이곳에 담겨 울려 퍼졌을 생각을 하니 종각이 새삼 다르게 보였습니다.
야경 사진 촬영 팁
인적이 드문 덕분에 삼각대를 펼치고 여유롭게 경북대종각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어요. 멋진 야경 사진을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답니다. 우선,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한 삼각대는 필수 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찍더라도 작은 삼각대가 있으면 훨씬 선명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카메라는 ISO 감도를 100~400 사이로 낮게 설정 하고, 조리개 값(F)은 F8~F11 정도로 조여주면 빛 갈라짐이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셔터스피드는 5초에서 15초 사이로 길게 확보하여 충분한 빛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죠. 저 역시 이런저런 설정을 바꿔가며 영덕의 밤을 한참 동안이나 기록했답니다.
역사의 무게를 마주하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영덕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같이 길을 나섰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마주친 장사리 해변. 그곳에는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문 닫힌 기념관 앞에서
아직 문을 열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기념관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해변에 좌초된 모습으로 재현된 문산호(LST)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거대한 군함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1950년 9월 14일,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던 치열했던 전투의 순간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듯했습니다. 푸르고 평화롭기만 한 장사리 해변의 풍경과 녹슨 철갑의 군함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조화가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과 학도병 이야기
많은 분들이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통해 이곳의 이야기를 접하셨을 겁니다. 저 또한 영화를 보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이 영화는 바로 이곳 장사리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양동작전, 즉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한 기만 작전에 투입된 772명의 어린 학도병들. 평균 나이 17세, 총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던 앳된 소년들이었습니다. 불과 2주간의 짧은 훈련을 받고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그 어린 학도병들에게 '조국'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념관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의의
장사상륙작전(작전명 174)은 6.25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인천상륙작전 D-1에 감행된 중요한 기만 작전이었습니다. 독립 제1유격대대 소속 772명의 학도병 은 태풍 '케지아'가 북상하는 악천후 속에서 상륙을 시도했습니다. 이 작전의 목표는 북한군의 주력을 동해안으로 유인하고 보급로를 차단하여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북한군 2개 사단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하며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많은 수가 실종 되었습니다. 성공한 작전 뒤에 가려진 '잊혀진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곳 장사리 해변은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것! 영덕에서의 하룻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삼척의 어느 바다를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 하지만 계획이 틀어진 덕분에 영덕이라는 곳의 매력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삼척으로 향하던 발걸음, 영덕에 머물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출발한 길이었지만, 막상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제 마음대로였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덕의 몇 곳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해가 졌고, 결국 삼척행을 포기하고 영덕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결정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즉흥적인 결정이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맞이 공원의 상쾌함
다음 날 아침, 장사리를 지나 마주한 영덕 해맞이 공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밤새 묵직했던 마음을 씻어내 주는 듯한 상쾌한 바닷바람과 눈부신 아침 햇살! 동해안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창포말 등대의 모습은 영덕이 왜 해맞이 명소인지를 단번에 증명해 주었습니다. 잘 닦인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맞는 아침 공기는 그 어떤 피로회복제보다 효과가 좋았답니다.
느린 여행의 매력
목적지를 정해두고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도 좋지만, 이번 영덕 여행처럼 발길 닿는 대로 머무는 '느린 여행'의 매력은 정말 특별합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고, 잊고 있던 역사를 마주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여행의 참된 의미는 목적지 도착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요한 밤의 사색을 안겨준 삼사해상공원부터 가슴 먹먹한 역사의 현장 장사리 해변, 그리고 눈부신 아침을 선물한 해맞이 공원까지. 우연히 머물게 된 영덕에서의 1박 2일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깊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가끔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예상치 못한 만남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